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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전주·제주 등 길 잃은 균형발전

[서울신문]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지난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는 신도시 지역과 구도심 사이에 심화된 불균형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서울신문 DB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지난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는 신도시 지역과 구도심 사이에 심화된 불균형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정부세종청사 전경.서울신문 DB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서 외곽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슴푸레하던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공무원의 도시’로 불리는 신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가 시작되는 곳이다. 2012년 세종시 출범 전만 해도 옛 연기군을 대표하는 중심지였던 조치원읍은 신도시에 주인 자리를 내준 뒤 변두리로 밀렸다. 두 생활권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은 가로등의 명암이 만든 경계선만큼이나 극명하게 갈린다. 수도권 인구 분산과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만든 행정중심복합도시는 어쩌다 구도심을 몰락시키고 주변 지역 인구만 빨아들이는 ‘포식자’, 같은 행정구역인 읍·면 주민들로부터도 ‘그들만의 세상’으로 불리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일까.

“세종시는 공무원들끼리 담을 쌓고 사는 도시예요. 우리에게는 ‘넘사벽’이죠.” 조치원읍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박모(45)씨는 15일 신도시를 ‘세종시’라고 불렀다. 행정구역상 조치원읍도 세종시다. 하지만 서울신문이 만나 인터뷰한 세종시민 7명 중 읍·면에 거주하는 4명에게 세종시란 그저 인접한 충남 공주시나 충북 청주시와 다를 게 없었다. 조치원읍에 거주하는 공인중개사 양모(45)씨는 “같은 세종시 안에서도 같은 시민이라는 유대감과 교류가 없다. ‘동’ 지역과 ‘면’ 지역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파워볼게임

박씨는 얼마 전 세종시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다가 조치원읍을 ‘세금 잡아먹는 낡은 촌구석’이란 식으로 비하한 글을 읽고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학부모 모임에서조차 신도시에 원래 거주하던 엄마들끼리 뭉치고 조치원읍 등 구도심에서 이주한 엄마들은 끼워주지 않아요. 그들만의 세상 같아요.”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더라도 지금처럼 같은 권역에서조차 소통과 상생발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신들의 삶이 달라질 건 없을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오히려 집값만 올라 터전을 잃고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날 것을 우려한다. 세종시 북쪽 전의면에 거주하는 50대 이연희씨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생긴 이후 피부로 느끼는 것은 없고 땅값만 올랐다”며 “국회가 내려와 집값이 더 오르면 집 없는 원주민들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7월 20일 국회 연설에서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를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발언한 이후 세종시 신도시 아파트값은 2억~3억원가량 껑충 뛰었다. 조치원읍 아파트값 역시 1억~2억원 올랐다.

조치원읍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임선호씨는 연기군이 세종시로 간판을 바꿔달고서부터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 지금은 시청으로 바뀐 옛 군청이 조치원읍에 있었을 때는 출근 전 아침을 먹으러 오는 이들로 오전 7~8시부터 늘 가게가 북적였다. 임씨는 “이곳에서 16년간 장사를 했는데 못 팔아도 하루에 100만원어치 이상은 팔았고 많을 때는 200만원어치도 팔았다. 그러나 신도시가 생긴 이후로는 손님이 뚝 끊겨 지금은 70만원어치 팔기도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임씨는 “국회가 내려온다고 한들 다들 신도시로만 가지 구도심으로 오진 않을 거다. 정치권에서 균형발전 얘기하는 걸 들으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세종시 역시 대전세종연구원 연구용역을 통해 지난해 발간한 ‘제2차 세종시 균형 발전 기본계획’에서 ‘최근 세종시에서는 건설 중인 신도시와 기존 읍·면 지역과의 환경적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지역 간 불균형은 이주민 중심의 신도시와 기존 주민 중심의 읍·면 지역 간에 잠재적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자체 평가했다.

신도시와 기존 구도심 간 불균형과 환경 격차, 소통의 단절은 비단 세종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혁신도시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강원 원주시에서 자영업을 하는 이모(38)씨는 “원주 혁신도시는 나와 관계없는 전혀 동떨어진 곳으로 느껴진다. 혁신도시가 생겼다고 그다지 달라진 것도 없다”고 전했다. 그는 “원주에 공공기관이 내려와 경제활성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혁신도시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빈 상가가 많아 장사가 잘 안된다”고 전했다.

세종시 구도심 조치원읍에서 정부세종청사가 입주한 신도시로 가는 외곽 도로의 풍경. 조치원읍 도로의 가로등은 컴컴한 반면 신도시 경계지점부터는 가로등이 도로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제공
세종시 구도심 조치원읍에서 정부세종청사가 입주한 신도시로 가는 외곽 도로의 풍경. 조치원읍 도로의 가로등은 컴컴한 반면 신도시 경계지점부터는 가로등이 도로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 제공

국민연금공단 등이 이전한 전북 전주시도 마찬가지다. 전주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42)씨는 “연금공단이 오고 나서 전북 혁신도시 일대에 금융타운이 조성되고 구도심도 재생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며 “정주 여건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제주로 이전한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본사 직원 85명 가운데 가족과 함께 제주로 이주한 직원이 25명(29%)뿐이라는 지적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나오기도 했다.엔트리파워볼

특히 실생활과 밀접한 교육·의료·문화 인프라의 차이가 크다. 세종시만 보더라도 2017년 기준 어린이집의 73.4%가 신도시에 몰려 있고, 2018년 기준 초등학교의 59.6%, 중학교의 69.6%, 고등학교의 82.4%가 신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공공체육시설 역시 동 지역 비중이 높다. 하지만 전의면 거주자인 이씨는 신도시에 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세종도서관이 생겼다고 아이들이 참 좋아했는데, 갈 수가 없어요. 신도시에 가는 버스 노선이 하나 있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교통망이라도 좋다면 신도시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는데, 버스 노선을 늘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불편한 교통은 물리적 단절을 초래한다. 이씨는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고 싶다면 국회 등 국가기관만 덜렁 내려보낼 게 아니라 신도시의 주변 권역, 그리고 구도심 원주민들의 열패감에도 귀를 기울여달라”고 호소했다.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세종 박찬구 선임기자 ckpark@seoul.co.kr

건강검진센터 예약 문의 폭주..사실상 마감
코로나19로 검진 미뤘다 뒤늦게 예약 폭증
건강검진 11월 이후 연말 쏠림현상 심화

[앵커]

해마다 연말이면 건강검진 예약이 쉽지 않았는데 올해는 특히 더 어렵습니다.파워사다리

기한이 다가오면서 그동안 코로나19로 검진을 미뤄뒀던 수검자들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기 때문인데요.

정부는 검진 기간을 내년 6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박홍구 기자입니다.

[기자]

연말을 앞두고 건강검진센터에는 예약 문의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예약을 하지 못한 경우 올해 안에 건강검진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코로나19로 검진을 미뤘던 대다수 수검자들이 기한이 다가오자 앞다퉈 예약에 나서면서 검사가 일찌감치 마감됐기 때문입니다.

[건강검진센터 관계자 : 저희같이 종합검진만 전문으로 하는 기관은 올해 벌써 마감이 됐어요. 검진이 그거는 저희뿐 아니라 다른 종합검진기관들도 다 비슷한 상황입니다.]

올해 10월 말까지 건강검진 수검률은 43.7%로 50%대를 기록했던 예년에 비해 6% 포인트 이상 낮은 수준입니다.

이전에도 절반 가까이가 연말에 건강검진을 받는, 쏠림 현상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입니다.

검진을 받지 못할 경우 사업주와 직장가입자는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검진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강도태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 : 올해는 코로나19로 연말 쏠림현상이 가중될 위험이 더 커졌습니다.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검진 기간을 내년 6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복지부는 유관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예산 등 후속대책을 논의한 뒤 이달 중순쯤 건강검진 기한 연장을 공식 발표할 계획입니다.

YTN 박홍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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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길잃은 ‘메이드 인 코리아’①] ‘외산 잔치’에 무너지는 생태계

[편집자주]국내 산업계 전반에 외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 경쟁력은 여전히 확보 못 한 상황에서 저가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산에 자리를 뺏기고 있어서다. 통신·게임 분야는 물론 소재·부품·장비와 신재생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외산이 잠식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 무관심한 정부와 ‘저가’·‘기술력’을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밀려 들어오는 외산 사이에서 국내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길을 잃은 KOREA 기업들. 무너지는 산업 생태계 속 이들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 한국의 하늘길은 외산 드론이 점령한 지 오래다. 국내 드론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완구·레저용 드론은 90% 이상이 중국의 DJI사 제품이다. 산업용 드론시장 역시 DJI 제품이 70% 이상 차지한다. 세계 최대 드론기업인 DJI는 싼 가격과 함께 기술력을 내세워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보안 유출 문제에도 공공기관마저 중국산 의존도가 높다. 한국공항공사의 드론 입찰엔 10여개 국내업체가 참여했지만 결국 값싼 DJI 제품이 낙찰됐다. 공항공사가 2016년부터 사들인 13기의 드론 모두 DJI 제품. DJI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까지 챙기고 있다. 농가에서 드론을 구입하면 지자체가 약 5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데 이 중 상당금액이 DJI 주머니로 들어간다.

# 중국산 드론의 높은 점유율은 상대적으로 국내 관련 산업 기반이 취약한 데다 정부가 대기업 진출마저 막아놓은 탓이란 지적이다. 드론은 2017년 공공발주에서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대기업 진출이 제약돼 있다. 현재 국내 드론 제작업체 수는 200여곳. 이 중 다수가 평균 매출액 5억원 이하의 영세기업이다. 기술개발을 위해선 차세대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지만 여력이 안되는 실정이다. 공공기관 입찰도 이들에겐 하늘의 별따기. 제조시설확보와 생산·검사시설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업체도 몇 안된다. 3년 뒤 5조5000억원 규모의 시장으로 확대된다는 국내 산업용 드론시장. 국내업체는 꽃도 피워보기 전에 세계 1위 중국기업에 안방을 모두 내주고 있다는 상황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가 드론을 이용해 배관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사진=인천공항공사
인천공항공사 관계자가 드론을 이용해 배관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사진=인천공항공사

산업계는 이 같은 드론 사례가 국산화율이 저조한 국내 산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국산 드론이 기술과 인프라 부족 등으로 국내시장에서 맥을 못 추는 가운데 외산의 공격에 바로 노출됐다는 것이다. 비단 드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ICT(정보통신기술) 강국’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공공부문 네트워크 장비는 외산에 자리를 뺏긴 지 오래고 연간 4조원대에 이르는 국내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도 외산의 침투가 시작됐다.

태양광·풍력… 밸류체인 전멸, 외산 잠식

문재인정부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태양광과 풍력 등도 외산업체의 ‘저가 공습’에 휘둘리고 있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태양광 설치량은 반기 사상 처음으로 2GW(기가와트)를 돌파했다. 하지만 중국업체의 공격적인 국내 진출로 국산 태양광 모듈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12.4% 하락한 67.4%에 그쳤다. 반면 올 상반기 진코솔라와 JA솔라 등 중국산 태양광 모듈 설치량은 0.69GW로 한국시장 점유율이 32.6%에 이른다.

주택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모듈/사진=뉴스1 DB
주택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 모듈/사진=뉴스1 DB

이들의 경쟁력은 역시 ‘가격’이다. 통상 태양광 모듈은 국산보다 중국 제품이 약 10% 싸다. 98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만든다고 가정할 때 중국산 모듈은 300억~350억원, 국산은 350억~370억원가량 드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공단은 중국계 회사들이 신규 건설 제한과 보조금 축소 등 태양광 규제안으로 자국 내수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자 한국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가까우면서도 태양광 보급정책을 펴고 있는 일종의 ‘기회의 땅’인 셈이다.

모듈 이외의 나머지 소재 산업은 이미 중국업체의 잠식이 끝난 상황이다. 태양광산업 생태계는 폴리실리콘→잉곳→웨이퍼→셀(태양전지)→모듈(패널) 순으로 구성돼 있는데 기초소재의 경우 95% 이상이 중국산이다.

이러한 구조 탓에 국내 태양광 밸류체인은 올 1분기를 기점으로 모두 전멸했다. ‘태양광의 쌀’이라 불리는 폴리실리콘 생산업체 OCI와 한화솔루션은 잇따라 국내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국내에서 잉곳·웨이퍼를 제조하는 업체들도 몇 년 전부터 하나둘씩 사라졌다. ‘넥솔론’은 2년 전 파산했고 ‘웅진에너지’는 지난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태양광 제조업체 관계자는 “모듈 설비를 아무리 늘리더라도 기초 소재는 외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여서 태양광 설비를 증설하면 중국업체에게만 좋다”며 “에너지전환도 좋지만 구조적인 외산 의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산업 생태계 조성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현대중공업 떠난 자리… 외산이 점령

풍력시장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주요 조선사인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등도 풍력사업에 뛰어들었으나 각종 규제와 수익성 악화 등으로 모두 철수한 상태다. 그 자리를 외산 풍력설치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다.
현재 국내 풍력 산업시장 점유율 1위는 세계 최대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인 덴마크 ‘베스타스’로 35%에 달한다.

국내업체인 유니슨(17%)과 두산중공업(11%)이 추격하고 있지만 독일 지멘스(9.5%)와 스페인 악시오나(4.3%)까지 포함한 외국기업 점유율은 70%에 달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해상풍력으로 12GW 규모의 전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외산기업들의 시장 공략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해에는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오스테드’도 국내시장에 진출했다.

탐라해상풍력/사진제공=두산중공업
탐라해상풍력/사진제공=두산중공업

한 풍력제조사 관계자는 “국내시장이 커지는데 외산 때문에 오히려 국내업체가 생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국산 기자재가 품질과 AS 등 경쟁력을 갖췄더라도 규모의 경제에서 밀리다 보니 수주 경쟁이 붙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산을 쓰고 결국엔 국내 산업 경쟁력이 악화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선 정부 개입 없이는 앞으로도 이 같은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국산화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지금은 세계적인 풍력 제조업체로 성장한 베스타스·지멘스·골드윈드(중국)나 태양광업체 진코솔라·JA솔라 역시 초기 자국시장 물량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베스타스와 지멘스의 자국 시장 점유율은 95%, 골드윈드는 88%에 달한다.자국산업을 키우지 않으면 고용률 저하와 국부 유출 등 각종 부작용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핵심설비는 에너지 안보와도 관련이 있는 기술임에도 기술종속이 심각하다”며 “정부가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선제적 투자로 기술독립을 이루고 더 이상의 국부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품목에 대해 글로벌화를 진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며 “정부의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mt.co.kr

천사 선생님도 20대 무용 꿈나무도
과속·신호위반 무법질주에 스러져
청와대 국민청원 “아무도 책임 안져”
“도로 흉기 10대 차량 이용 차단을”
유족 “너무 비통 헛된 죽음 더 없길”

지난해 5월 대전에서 무면허 10대 운전자가 인도를 덮쳐 데이트를 하던 연인 중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사진은 당시 사고 차량이 심하게 훼손돼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5월 대전에서 무면허 10대 운전자가 인도를 덮쳐 데이트를 하던 연인 중 한 명이 사망하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사진은 당시 사고 차량이 심하게 훼손돼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젊은 두 남녀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고, 한 명은 크게 다쳤다. 아울러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참담한 결과가 초래됐다. 유족들과 홀로 남게 된 남자친구의 정신적 고통이 어떠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29일 대전지법은 외제차를 몰다가 사고를 낸 전모(17)군에게 장기 5년, 단기 4년을 선고했다. 전군은 지난해 2월 10일 오후 2시쯤 대전 중구 대종로에서 무리하게 차선 변경을 시도하다가 인도를 걸어가던 박모(28ㆍ여)씨와 조모(29)씨를 쳤다. 이 사고로 박씨는 사망했고, 조씨는 크게 다쳤다. 전군이 몰던 차는 제한속도인 시속 50㎞를 훨씬 초과한 96㎞로 달리며 앞차를 추월하려다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침범했다. 그리고 맞은편 인도를 걸어가던 피해자들을 덮쳤다. 피해자 입장에선 전혀 예상치 못한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씨는 사고 당시 경남 창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남자친구와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선고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분노와 당부의 글이 올라왔다. 박씨의 유족이라고 밝힌 청원자는 “사랑하는 딸이 불법 렌터카 대여를 통한 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 너무 억울하고 비통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유족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1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렌터카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이 ‘도로 위의 흉기’에 의해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달라는 유족의 당부를 엄중히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다. 박씨를 ‘천사 같은 선생님’으로 기억한다는 한 학부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10대가 렌터카를 빌릴 수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도, 아무도 책임을 안 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잠깐 기절했을 거야. 자리 떠나자”

대책이 안 나오니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30일 오전 광주지법 404호에서도 10대 렌터카 운전자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푸른색 수형복을 입은 김모(17)군은 지난 10월 1일 전남 화순군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안예진(21ㆍ여)씨를 치고 달아났다. 김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및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운전) 혐의로, 옆에 타고 있던 또래 정모군은 도주치사 방조 및 무면허 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판사가 “고등학생입니까”라고 묻자, 김군은 “네”라고 답했다. 김군과 함께 기소된 정군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고 차량인 흰색 K5는 정군이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30대 남성의 카셰어링(차량 공유) 계정을 빌려 구한 것이었다. 정군은 김군이 면허가 없는 것을 알고도 운전을 시켰으며, 사고 후 김군에게 “피해자가 기절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자리를 피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정군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변호인의 말에 방청석에선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구속영장 발부하고요. 지명수배 의뢰하겠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검사가 김군의 범죄사실을 읊은 뒤, 판사가 죄를 인정하느냐고 묻자, 김군은 머뭇거림 없이 “네”라고 말했다. 당당한 그의 태도에 방청석이 또 한번 술렁였다. 판사가 김군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김군의 가족은 방청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정작 황당한 사고로 딸을 잃은 유족은 비장한 표정으로 눈물을 삼켰지만, 가해자 가족은 소리 내 우는 이상한 광경이었다.

재판이 끝나자 예진씨의 부친 안모(53)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도 (가해자 측으로부터) 연락 한 통이 없었어요. 자기 자식 소중한 건 아는 사람이 자식을 잃은 우리한텐 사과 한마디 없다는 게 너무 괘씸해요.”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안예진씨는 전남 화순군의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안씨의 막내 삼촌 안기열씨가 지난달 23일 이곳을 찾아 예진씨의 납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화순=고영권 기자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안예진씨는 전남 화순군의 납골당에 잠들어 있다. 안씨의 막내 삼촌 안기열씨가 지난달 23일 이곳을 찾아 예진씨의 납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화순=고영권 기자

스물한 살이면 걸어 온 길보다 갈 길이 훨씬 많은 나이다. 휴대폰이 켜질 때마다 안씨가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딸 사진을 보고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겠다며 몸의 움직임을 치열하게 연구했던 예진씨의 삶은 사고 다음날 멈췄다. 이날 법정에는 고교시절 예진씨와 댄스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 신빈(21)씨도 나왔다. “예진이는 ‘팝핀’과 ‘어번’을 섞어서 추는 춤을 연구해 왔고, 새벽까지 연습할 만큼 열정적이었어요.”

춤을 제대로 배우려고 상경했던 예진씨는 추석을 맞아 부모님이 머무는 전남 화순군으로 내려왔다. 그는 추석 당일인 10월 1일 저녁 사촌들을 만났고, 귀가 도중 사고를 당했다. “자고 있는데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예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서 ‘괜찮냐’고 물었더니, ‘좀 잘못된 거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때 알게 된 거죠.” 예진씨의 막내삼촌 안기열(42)씨가 택시를 타고 황급히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땐 이미 예진씨가 떠난 후였다. “응급실에 들어가니 형수가 울고 있고, 형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어요. 침대를 보니 예진이는 천으로 덮여 있었어요.”


제한속도 30㎞ 도로를 100㎞ 질주

사고만 없었으면 여느 때처럼 평온했을 명절이었다. 안기열씨는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한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사고 후에 아무런 조치 없이 도주했다가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에요. 소년범이라고 약하게 처벌할 게 아니라, 죄의 경중을 따져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해요. 한 번이면 실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가해자들은 이전에도 사고를 냈어요. 애들이지만 애들이 아닌 거죠.” 조카를 잃은 안씨는 분을 이기지 못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딸이 안치된 납골당을 찾는 예진씨의 어머니는 기자에게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누차 당부했다. “딸의 죽음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요. 다시 돌아오면 하고 싶은 거 모두 하게 해 줄 테니 얼른 오라고 기도했어요. 춤을 늦게 배워서 이제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10월 1일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가 난 전남 화순군 화순읍 소재 도로에 시속 30km 이하 표시가 그려져 있다. 사고 차량은 반대편 차로에서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안예진씨를 치고 달아났다. 화순=고영권 기자
지난 10월 1일 10대 무면허 렌터카 사고가 난 전남 화순군 화순읍 소재 도로에 시속 30km 이하 표시가 그려져 있다. 사고 차량은 반대편 차로에서 1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안예진씨를 치고 달아났다. 화순=고영권 기자

지난달 23일 찾은 사고현장은 참혹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주가 넘었지만 사고 지점을 표시해 놓은 횡단보도 위 노란색 스프레이 자국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예진씨가 무면허 렌터카 차량에 치여 추락한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인근에 전통시장이 있어 낮 시간에는 사람과 차로 붐볐다. 사고차량은 10월 1일 밤 11시40분쯤 횡단보도를 건너던 예진씨를 치고 달아났다. 편도 2차선 도로의 바닥에는 제한속도가 30㎞라고 선명히 써 있었고, 횡단 보도 앞에는 과속방지턱이 2개나 설치돼 있었지만, 사고 차량은 100㎞가 넘는 속도로 질주하다가 사고를 냈다. 가해자들은 20㎞ 떨어진 곳까지 도주했다가 사고 현장으로 돌아왔고, 현장에 있던 경찰관에게 자수했다. 화순경찰서 관계자는 “기소된 2명 이외에 동승자 3명도 무면허 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해 지난달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 밝혔다.

사고 현장 인근 직장에서 일한다는 윤모(39)씨는 “예전에도 같은 길에서 위협적으로 운전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며 “10대들이 차를 빌릴 수 있는 루트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진씨의 이모부 김종배(39)씨는 “차를 빌려줄 때 본인 확인을 철저히 하고, 운전 중에도 본인이 맞는지 확인해야 비극이 멈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고 발생 3주 후인 지난달 23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보인다. 횡단보도 위에 사고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노란색 스프레이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화순=고영권 기자
사고 발생 3주 후인 지난달 23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보인다. 횡단보도 위에 사고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노란색 스프레이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다. 화순=고영권 기자

10대 무면허 교통사고 연간 700건

유족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면허발급 대상이 아니라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만 18세 미만이 낸 교통사고는 매년 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하루 한 건 이상 무면허 차량의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무면허 사고는 2015년 724건에서 2016년 513건으로 주춤하는가 싶더니 2018년 618건, 지난해 689건 등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까지 5년간 사망자는 91명에 달했고, 4,862명이 다쳤다. 특히 10대 무면허 사고 중에서도 렌터카를 이용한 사고가 연간 100건에 가까워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일보가 최근 5년 사이 언론에 보도된 사건 위주로 10대 무면허 운전 사고 21건을 분석했더니, 빌린 차량을 몰다가 사고를 낸 사례(12건)가 절반 이상이었다. 분실된 운전면허증을 렌터카업체에 제시해 차를 빌리거나, 타인 명의를 도용해 카셰어링 서비스로 차를 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0대들은 차를 빌릴 때 본인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허점을 노렸으며, 정상적으로 대여된 렌터카가 여러 사람을 거쳐 10대들에게 불법으로 다시 전달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10대 렌터카 사고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해자 엄벌도 중요하지만, ‘탈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10대가 차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진숙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은 성인의 행동을 모방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으스대고 싶어 한다. 여기에 자신만큼은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란 근거 없는 믿음까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과거에 자전거를 훔치던 게 오토바이를 거쳐 지금은 차로 바뀌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미성년자의 차량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량 운전의 편리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사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좀 더 갖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기주 도로교통공단 광주전남지부 안전교육부 교수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3,400여명이 죽었는데도, 자동차 운전을 장난감 다루듯 너무 쉽게 생각하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 10대 무면허 사고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하다. 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예진씨의 유족들도 도로에서 허망하게 죽어 가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사고차량은 애초에 도로에 나올 수 없는 차량이었고, 나오지 않았다면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진씨의 삼촌 안기열씨가 친척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난달 5일 국민청원 글을 쓰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쓴 글에는 25만1,996명이 동의해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화순 광주=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이인서 인턴기자 woorilis@naver.com

[그 후 50년, 여기 다시 전태일들]
2부 청년 전태일, 세밀화로 보다 -프리랜서 웹툰 작가들의 삶
③이익독식의 고리와 해법

“결국 한 회사에서 작가에게 수수료를 두번이나 떼는 꼴 아닌가요?”

웹툰 작가 오현영(가명·29)이 대뜸 이런 말을 던졌다. 부조리에 대한 강한 항의가 담긴 말투였다. 오현영의 말은 웹툰 플랫폼이 이중 구조를 만들어 웹툰 작가에게 돌아갈 몫을 줄이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오현영을 비롯한 동료 작가들이 그린 웹툰으로 나온 매출 가운데 10~20%가 작가의 몫으로 돌아온다. 작가의 몫이 이렇게 쪼그라든 이유는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통상 두 군데에서 수수료를 떼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지 등 웹툰 플랫폼에서 한번, 작가 관리와 기획·제작 및 플랫폼과 소통 등을 맡는 웹툰 에이전시가 또 한번 수수료를 받는다. 플랫폼은 통상 매출의 30~50%를 가져가고, 에이전시는 플랫폼의 몫을 뺀 나머지 금액에서 다시 30~70% 가까이 가져간다. 이런 이중 구조는 최근 몇년 새 웹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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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과 작가 사이에 끼어든 웹툰 에이전시

케이티(KT)경제경영연구소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의 분석을 종합하면, 국내 웹툰 산업의 매출 규모는 올해 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10년 만에 10배 늘었을 정도로 고속 성장이다. 그중 네이버와 카카오 등의 플랫폼이 75%라는 압도적인 방문자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엔 국외에서 ‘케이(K)-웹툰’ 열풍이 거세다. 지난해 기준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그룹 유료 콘텐츠(웹툰, 웹소설, 기타 저작권 수익 등) 국내외 거래액의 합이 1조원을 넘겼다. 네이버 웹툰은 100개국에서 만화 애플리케이션 수익 1위를 기록했고, 카카오(카카오재팬)가 일본 시장을 겨냥해 세운 웹툰 플랫폼 ‘픽코마’ 애플리케이션은 통합 2천만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폭발적인 성장세에도 정작 몸과 마음을 깎아가며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들의 수익 구조는 더 나빠지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이 이중 구조까지 만들어 이익의 상당 부분을 거둬간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10년 이후 웹툰 제작·유통 구조에는 크게 두가지 변화가 있었다. 첫째, 웹툰을 기획하고 소속 작가와 웹툰의 지식재산권(IP)을 관리하는 에이전시 기업들이 증가하고 성장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웹툰 작가들은 대부분 플랫폼과 직접 계약했다. 플랫폼 내 편집부가 기획과 작가 관리를 하고 유통도 함께 맡는 식이었다. 인기 작가 조석의 웹툰 <마음의 소리>에 자주 등장하는 담당자도 네이버 소속이었고, 최근 티브이(TV) 예능에 출연하는 <복학왕>의 작가 기안84(본명 김희민)가 네이버에서 숙식하며 웹툰을 연재하던 모습이 눈길을 끈 적도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웹툰 에이전시가 중간 과정에 끼어들기 시작했고, 최근 5~6년 사이에 에이전시가 플랫폼과 간접 계약을 유도하는 구조가 정착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를 보면, 웹툰 에이전시의 매출액은 2017년 1377억원에서 2018년 2048억원으로 1년 새 1.5배 가까이 늘었다. 이렇게 중간에 에이전시가 끼어드는 이중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작가들이 불공정한 계약에 문제 제기하기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웹툰 플랫폼은 불공정 계약의 책임을 에이전시에 떠넘기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한 플랫폼에 연재하는 작가들이라고 해도 작가들이 계약한 곳은 서로 다른 에이전시인 경우가 많아 조직적으로 불공정한 상황에 대응하기도 어렵습니다. 점점 연대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웹툰 작가 김선후(가명·29)의 말이다.

둘째, 한발 더 나아가 거대 웹툰 플랫폼들이 에이전시를 직접 만들거나 지분을 투자해 소유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연담’이라는 회사 내 에이전시를 만들어 웹소설과 웹툰 기획을 맡고 있다. 카카오페이지는 지난달 5일 웹툰 기획과 제작을 맡는 에이전시인 ‘투유드림’에 2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하기도 했다. 네이버 웹툰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웹툰 에이전시 ‘와이랩’의 지분 12.6%를 53억원에 인수했다. 거대 플랫폼들뿐만 아니다. 몇몇 중소 규모 플랫폼들도 거대 플랫폼을 벤치마킹해 자회사로 에이전시를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작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에서 일정 부분을 에이전시 수수료로 챙기고 있는 것이다. 일부 플랫폼은 설립 초기 작가들과 직접 계약을 하다가 2년쯤 지나면서부터 에이전시를 자회사로 만들더니 작가들에게 플랫폼에 연재하려면 이 에이전시와 계약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플랫폼이 작가와 직접 계약할 때는 플랫폼 쪽에서 작가 관리와 편집, 기획 등을 직접 했어요. 과거부터 그걸 본 작가들 입장에서는 그 업무만 에이전시에서 따로 할 뿐인데 수수료를 한번 더 떼어가는 일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거죠.” 오현영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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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시장 이중 구조는 “대기업 ‘통행세’와 같은 원리”

이런 구조는 대기업이 계열사 간 내부 거래 과정에서 아무런 기여 없이 중간 수수료만 챙기는 이른바 ‘통행세’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법률 조언을 해온 임애리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플랫폼이 직접 할 수 있는 계약도 에이전시를 통하며 작가에게 열악한 구조를 안기는 식으로 업계가 변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 입장에서는 플랫폼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플랫폼과 에이전시 사이의 계약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짚었다. 이어 “에이전시를 소유한 플랫폼이 작가들에게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계약하도록 유도하는 건 전형적인 불공정 거래로 보인다. 작가가 계약 상대방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 예술인복지법상 불공정 행위에 해당할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복지법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예술인에게 불공정한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정거래위원회에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이중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웹툰 작가들 사이에는 ‘공장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한 작품에 여러 작가를 투입해 어떤 작가는 콘티만, 어떤 작가는 채색만, 어떤 작가는 펜 터치만 하는 식으로 분업해 작품을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웹툰의 주간 단위 연재 결과물에 점점 더 많은 컷 수와 높은 그림 퀄리티가 요구되면서 작가 혼자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작가들의 수익이 줄면서 개인적으로 어시스턴트를 고용해 작업하기 힘들어진 탓도 있다. 최근 생겨나는 ‘웹툰 스튜디오’가 주로 이런 ‘웹툰 공장’들이다. 이렇게 되면서 신인 작가들이 자기 작품과 브랜드를 가지고 데뷔할 수 있는 길은 더 험난해졌다. 스튜디오나 공장에서 나온 집단 창작물이 지금보다 더 일반화되면 신인 작가가 혼자 또는 어시스턴트 1~2명과 작업해 경쟁에 뛰어들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대본소를 중심으로 유명 만화가 이름으로 여러 팀이 작업하는 공장식 만화 시스템이 있었는데, 그때도 신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 일이 반복될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출판 만화와 웹툰 세계를 모두 경험한 작가 김성호(가명·42)의 말이다.

플랫폼이 이런 흐름을 놓칠 리 없다. 플랫폼이 직접 ‘웹툰 공장’의 주인이 되려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네이버 웹툰 자회사 ‘리코’(LICO)가 공장식으로 제작한 작품을 네이버에 연재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기획과 제작, 유통까지 한꺼번에 하려는 ‘수직 계열화’ 시도인 셈이다. “플랫폼에서 기획하거나 생산한 작품들이 ‘한 무리’를 형성하게 되죠. 그들 작품 위주로 ‘밀어주기’가 이어지면 웹툰업계 수익은 플랫폼 쪽으로 쏠리고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게 될 겁니다.” 만화업계에서 20년 동안 기획 업무를 맡아온 ㅇ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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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회사 작품으로 아마추어 작가들과 경쟁?

거대 웹툰 플랫폼들은 이런 우려를 인정하지 않는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작가들이 온전하게 작품 창작에 몰입할 수 있도록 수익을 다각화한다는 목표를 한결같이 지켜왔다”며 “작품 연재와 프로모션 결정은 개인이냐 에이전시냐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웹툰과 카카오페이지 관계자도 “자사 스튜디오(에이전시)라고 해서 특혜를 줄 경우 다른 에이전시와 상생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특혜를 주는)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플랫폼의) 에이전시 지분 보유는 창작자들이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만드는 투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네이버의 웹툰 자회사 ‘리코’가 또 다른 불공정 논란을 낳는 등 우려는 현실화하고 있다. ‘리코’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의 공개 투고 공간인 ‘도전만화’, ‘베스트도전’에 직접 제작한 작품을 올려 반응을 본 뒤 네이버에 정식 연재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일부는 ‘리코’ 명의가 아니라 개인 작가 명의로 작품을 게재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네이버가 투자한 시스템으로 제작한 작품을 아마추어 작가들의 작품과 동일선상에 올려두고 네이버 정식 연재를 위한 경쟁을 시키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민 웹툰 평론가는 “다른 작가들은, 특히 아마추어 작가들은 네이버가 자신의 자회사가 만든 작품을 평가할 때 ‘팔이 안으로 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나”라며 “리코 작품을 개인 작가 명의로 게재하는 것도 독자와 아마추어 작가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 웹툰 쪽은 이 또한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네이버 웹툰 관계자는 “리코 설립 초기작들은 검증을 위해 ‘베스트도전’을 거쳤으나 현재는 기성 작가 작품처럼 편집회의에서 작품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다양한 작품을 필요로 하는 네이버 웹툰 입장에서 리코는 작은 제작사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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